그리스도인의 추악한 거래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삿 11, 35)
입다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안겨주시면, 집에서 제일 먼저 나와 영접하는 자를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을 맹세하였다. 그런데 첫번째로 영접한 자가 바로 자신의 딸이었다. 입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미 하나님께 맹세를 했었고, 그리고 그 대상이 하필이면 자신의 무남독녀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마지막에 입다는 자신의 맹세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다. 입다가 한 맹세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주님께서 저를 도와 주신다면, 그러면 제가 그 댓가로 무엇을 할 것"이라는 이런 저런 '서원'이라는 이름의 소위 "추악한 거래"를 기억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기꺼이 다시 되돌려 받고 싶은 각종 맹세들도 또한 기억한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고행이나 금욕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간신히 얻어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이미 보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 이어 바로 후회하며 우리 자신에게 고통을 주게 될 어떤 약속이나 맹세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맹세보다는 온전한 헌신, 감사와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신다.
오늘 묵상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각종 기도에서 하나님께 "추악한 거래"를 서슴없이 일삼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내건 조건과 맹세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는 좌절과 가난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시며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우리의 나약함으로부터 당신께로 나아가는 길을 항상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추구하는 "추악한 거래"를 중단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맡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자유롭게 향유하는 복되고 팔팔한 2천 팔년 팔월 팔일을 열어젖히시길 ....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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