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 13)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잘 정돈된 상점들을 둘러엎으시는 일은 엄청난 자극이며 선동같이 보인다. 예수님은 마치 성전을 관리하는 총책임자처럼 행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할 것 대신에 자각할 것을, 열린 금고 대신에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님께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로 인해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은 시간과 수고들 때문이다. 역으로 이처럼 성전을 다루고 대하며, 하나님의 선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잘 것 없이 바치는 금전적인 헌금이나 제물로 단순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자극과 선동에 속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자 하신다. 무엇보다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귀담아 듣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구별된 성스런 공간들", 다양한 시간, 장소, 기회들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으로써 말씀을 내면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내적 상태와 외부 행동과의 일치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기도하는 집"은 관광적 명소이거나 박물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 대화할 수 있도록 초청하는 장소인 것이다.
유럽 여행 중, 조심스럽게 발자욱을 옮겨가며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표현한 각종 조각들과 그림들, 스테인드 글라스에 감명을 받아 교회 안을 둘러보는 가운데 흔히 접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조용한 분위기를 깨고 교회 안으로 무조건 비집고 들어오는 집시 어린이들입니다. 몸 전체가 땀과 먼지로 엉켜 지저분하며 헝클어진 머리에 맨발로 제단 앞으로 달려드는 그들, 하지만 제단 앞에서 딱 멈춰서서 자기들 나름대로 성호를 긋거나 잠시 묵도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리고는 손살같이 밖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기도의 형태와 모습이 아주 다양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해하시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얻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록 외모로 판단하지만, "여호와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삼상 16, 7)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각 처소에서 마음의 중심을 내어놓는 복된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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