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B. Brecht/브레히트 서사극

브레히트 서사극의 참뿌리, 인도 산스크리트 연극

그리스도의 편지 2018. 9. 12. 20:56





브레히트 서사극의 참뿌리, 인도 산스크리트 연극
- 산스크리트 연극 프롤로그 Prolog와 서막 Vorspiel 기술의 이전과 발전
 
 



표지 클릭시 교보문고에서 구매할 수 있다.


     독일에 소재하는 "BRECHT CODE"는 브레히트 출생 120주기 그리고 지난 8월 14일자로 브레히트 사후 62주년 되는 날을 기억함과 동시에 독서의 계절을 맞이해 연극과 문학 전공자이자 브레히트 서사극에 관심을 보이는 모든 전공자들을 위한 콘텐츠 "브레히트 서사극의 참뿌리, 인도 산스크리트 연극"을 선 보인다. 서사극 형식의 이전에 관한 한, 브레히트 자신의 "철저한 흔적 감추기"로 인해 6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브레히트 연구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의 서사극의 연구를 거듭하는 실정을 접하게 된다. 

    본 콘텐츠를 통해 이런 점을 극복하고 서사극 연구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브레히트가 발전시킨 서사극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느 연극과 희곡을 바탕으로 서사극 형식과 기술을 이전하고 발전시켰는지 입증하고 분석함으써, "서사극의 참뿌리"가 본 콘텐츠를 통해 명확하게 밝혀진다. 

    

    브레히트 연구자들에게는 여전히 불명확한 주제일지는 모르겠으나, 정작 브레히트 자신은 일찌기 포이터방어를 통해 인도 산스크리트극을 접했고, 그 이후 중국 원잡극 그리고 일본 노연극의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접했었다. 스테핀이 망명지로 가져온 산트크리트극 독어판, 2권은 중요한 후기 희곡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사천의 선인" 그리고 "코카서스의 백묵원"등을 창작하는데 지침서가 되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스테핀의 원고들을 전부 남겼지만, 이 두권의 책을 전망명지를 끌고 다녔고 유고 도서관에 남겼을 정도로 그에게는  "서사극을 위한 귀중한 교본"이었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서사극 이론을 발전시키고 정립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히트는 이미 1922년에 "르네상스, 그것은 아시아 고전의 소생"이라는 명제를 명확하게 제시할만큼 자신에 차 있었다. 심지어 브레히트가 죽은 후 62년이 된 지금 순간에도 "내 분야에서 내가 갱신자이기 때문에, 나를 형식주의자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들이 항상 있다. 그들은 나의 작업에서 옛 형식을 찾아내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새로운 어떤 형식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내가 관심을 두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나는 다양한 시대에 속한 시, 소설, 희곡술 및 연극의 옛 형식을 연구했다. 그런데 그러한 형식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나는 그것을 곧 바로 포기했었다" (브레히트, 1938년 8월 3일, GBA 26, 315f.)라는 말로 당대 연극학자나 독문학자는 물론, 현재의 브레히트 연구자들에게 그는 무덤에서도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위에 글에서 브레히트가 언급하듯이, 다양한 시대는 물론 "다양한 나라의 연극 옛형식"을 연구했고, 실제 무대공연과 연습을 통해 수없이 텍스트를 바꾸고 다시 썼다. 그렇기 때문에, 새전집 GBA에 인쇄된 작품만으로 어떤 형식을 발견하고 주장하는 일조차도, 브레히트의 비웃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본 콘텐츠는 BCI2000을 통한 대량 자료들의 분석, 베를린 브레히트 유고 도서관에 남겨놓은 2권의 산스크리트 드라마, BBA 관련 자료들, 그리고 산스크리트 연극, 원잡극과 노연극의 극작 이론서들과 브레히트 희곡들과 비교를 통해 브레히트 자신의 주장대로 무슨 형식과 무슨 기술을 받아들이고 곧 바로 포기하고 발전시켰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브레히트의 초기 작품인 "바알"에서 후기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관련성 있는 모든 희곡 작품들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브레히트 서사극의 참뿌리는 인도 산스크리트 연극이며, 원잡극과 노연극의 기술과 형식을 혼합하고 발전시켜 후기 작품들에서 자신의 서사적 형식과 기술을 완성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러한 "참뿌리"를 학문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브레히트가 구체적으로 남긴 흔적의 꼬리를 잡고 계속 연구를 거듭한다면, 여전히 브레히트에게 조롱받는 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꼬리는 다름 아닌 1929/30년 일본 能 (Nô)연극의 한 작품인『谷行 (Taniko)』를 가지고 번안했던 교훈극 『Der Jasager』(1929/30)에서 처음으로 能劇의 희곡을 자료로 삼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서사극의 뿌리를 찾는 점이다. 물론 그 작품만을 비교하고 분석한다면, 충분히 문헌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서사극의 형식과 기술을 일반화시킨다면, 엄청난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브레히트는 이미 그 형식을 교육극 몇몇 작품에서만 제한해서 사용했고, 그의 말대로 "곧 바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아래 본 콘텐츠 미리보기를 통해 서론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본 콘텐츠는 브레히트가 직접 접했고 그 자신이 이전하고 수용해 발전시킨 이론, 형식과 기술을 연극사는 물론, 문헌학적으로 브레히트의 창작과정에서 시도했었던 모든 자료들과 비교를 통해  "브레히트 서사극의 참뿌리"를 밝혀내고 있다.


   브레히트가 늘 즐겨 인용하던 헤겔의 "진리는 구체적이다 Die Wahrheit ist konkret"란 명제와도 같이, 브레히트가 자신의 서사극 이론이 어떻게 정립되었고 자신의 서사극에 구체적으로 실현했었는지를 자신의 이론서에서는 물론이고 도처에서 언급하고 있다. BCI2000의 도움으로 흔적 감추기에 거장인 브레히트 서사극 정립 과정에 대해 문헌적, 연극사적인 추적으로 그 진실에 가까운 답을 구체적으로 얻게 되었다. 특별히 연극 전공 학도들이나, 브레히트 서사극을 전공하는 학도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콘텐츠 내용 미리 맛보기




      본 콘텐츠는 "서사극의 생성과 이론의 정립"을 브레히트 초기에서 후기 희곡들과 인도 산스크리트 극, 원잡극과 일본 노연극과의 비교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서사극의 참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본 프로젝트가 브레히트 120주년에 내놓는 본 콘텐츠가 충분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해당 사진을 클릭하면, BrechtCode 링크에 도달하게 된다. (2018년 8월 말, 독일 검은 숲 언저리에서) 

    

배경 음악은 Ennio Morricone의 "Friendship and Lov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