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순례길에 (사진.글)

평화로 발전하지 못한 "북한 심장에 연결된 음악의 다리"

그리스도의 편지 2016. 5. 21. 16:39




북한 심장에 연결된 음악의 다리
- 8년전에 있었던 뉴욕 필하모니, 평양 공연을 회고하며  


 


2008년 3월 30일에 있었던 뉴욕 필하모니의 평양에서 아리랑 연주 장면


뉴욕 필하모니는 오늘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또 하나의 다리를 놓았다. Bernstein이 이끄던 뉴욕 필하모니는 일찌기 모스크바, 동베를린 그리고 닉슨 집권시에 모택동이 이끌던 북경에 오늘 드디어 외국 언론이 거의 접근할 수 없게 감시하는 김정일 정권하에 있는 평양에다 다리를 놓은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이 역사적인 소식으로 가슴에 찡함을 느꼈지만, 오늘따라 시의회 "종교"분과에 사전 회의 준비와 마라톤 회의때문에 특별하게 신경을 쓸 겨를 없이 저녁을 맞았다.
저녁에 독일 TV 저녁 뉴스들은 한결같이 다투어 이 획기적인 기사를 다루고 있었는데 ARTE 방송에서는 2시간 공연장면을 그대로 방영해 주어서 감격의 순간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무대 좌측엔 미 성조기, 우측엔 북한인민기가 세워진 극장에서 뉴욕 필은 북한 국가에 이어서 봐그너의 <로엥그린>과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를 수준 높게 1부에서 연주했지만, 조명이 환하게 비친 관객석은 수준높은 뉴욕 필의 연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표정이 없는 석고상들로 가득찬 것이 바로 북한 관객이었다.
    휴식 후 2부 순서에 지휘봉과 마이크를 동시에 들고 등장한 지휘자 Maazel은 북한 관객의 마음을 깊숙히 노크하기 시작했다. 첫 연주곡으로서 Gershwin의 "파리의 미국인, An American in Paris"라는 곡을 소개하면서 언젠가는 "평양의 미국인"이라는 곡도 작곡될 것이라는 농담으로 관객의 마음을 열면서 "즐겁게 감상하십시요!"란 한국말로써 굳은 북한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렇게 끝난 Gershwin의 곡은 관객을 술렁이게 하였으며 이어서 비제의 곡으로 극장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게 된다. 1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자발적으로 관객석 곳곳에 박수가 터지고 기립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지휘자 Maazel은 다시 등장하여 뉴욕필의 선임자였던 Bernstein을 기리며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그의 곡을 Bernstein 자신이 여기 이 자리에서 지휘한다고 생각하며 연주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지휘자인 자신은 퇴장해 버린다.


    뉴욕 필하모니가 일사불란하게 지휘자 없이 연주를 끝내는 것을 본 북한 관객은 거의 서구 관객이나 다름없이 표정이 누그러졌으며 관객석 반 이상이 기립한 상태이었다. 이 때, 등장한 지휘자 Maazel은 아무런 말도 없이 지휘봉을 휘여잡고 관객의 심장 깊숙이 음악의 다리를 놓는다. 북한 관객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가슴에 깊숙히 노크할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피콜로 소리가 애절한 리듬으로 극장을 가르며 이어진 곡은 바로 <아리랑>이었다.


    뉴욕 필의 <아리랑> 곡이 애절하고도 장중하게 울려퍼지자 관객석의 나이가 많은 층은 가슴으로 울었으며 곡조를 따라 부르는 여인네들 몸을 흔들며 장단을 따라가는 남정네들 귀에 익은 곡조라고 신기해 하는 젊은 세대들 북한의 체재를 누리고 살며 이 체제를 고집하는 이들 북한관객 모두에게 이렇게 굳은 얼굴들은 웃음이 온 얼굴에, 온 관중석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던 것이다.


    아리랑 연주가 끝나자 전 관객이 일제히 일어서는 지휘자 Bernstein이 일찌기 시작했던 음악의 다리가 평양에도 확실히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감격스런 장면이었다. 뉴욕필 지휘자 Maazel은 분명 이 연주를 통해서 그냥 <방언>만을 해보인 것이 아니라 <방언>의 번역까지도 훌륭하게 해낸 것이다.


    <방언>만이 아니라 번역까지도 가슴으로 전해들은 오늘 음악회에 참석한 북한 지도층은 모스크바에서 동베를린에서 그리고 북경에서도 그랬듯이 분명하게 오늘 이 <음악의 다리>를 자기들만 홀로 간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베를린, 북경과 모스크바에 놓인 다리처럼, 이렇게 북한 평양에 깊숙히 놓인 다리는 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애석하게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물론이고 미국과 대한민국 역시도 서로 핵무기를 사이에 두고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설전만 반복할 뿐, 평화를 위한 진정한 노력, 평화로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은 고사하고 "분단 고질화의 잰걸음"으로 퇴보하고 있다.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 이렇게 설전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 것일까?! (2008년 3월 30일)

 

 

배경음악은 "NY Philharmonic performs Arirang in N. Korea"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