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막 2, 22)
대부분 종교는 거의 음산한 내용들이고 아주 힘든 경우가 많으며, 끔찍할 정도로 노력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이런 형태 종교의 끝을 보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온 힘을 다해 죽음에 이르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수고의 부당 이득자가 되어도 된다.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이 다르다. 그 때문에 천사는 처음부터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눅 2, 11)라고 큰 기쁨을 선포했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기쁨이 팽배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는 우리를 환호하게 한다.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 이것을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불평하는 청중들에게 이야기하신다.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 중이다. 예수님은 낡고 오래된 염소 가죽으로 된 포도주 부대를 망가뜨리신다. 새롭고 신선한 내용은 그에 적합한 포장을 필요로 한다. 물론 오늘날 우리들은 과대포장으로 인해 자주 속아 넘어간다. 예배당이 서 있는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