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스가랴

애통하는 심령을 회복

그리스도의 편지 2011. 12. 14. 00:00

Candle




애통하는 심령을 회복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 12, 10)

 

    "하나님! 도대체 우리가 무슨 일을 했었나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사소하게 말하지 말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죄가 알려지게 되고 한 사람이 불의를 행하게 될 처지에 놓이며 숨김없이 탄식할 수 있으면, 성령은 역사하신다. 자신의 연민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위법 행위와 죄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

    "하나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시고 저렇게 죽어야만 하시도록, 도대체 우리가 무슨 일을 했었나요?!" 이러한 인식은 해방의 시작이요 용서를 위한 전제조건이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출발이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이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사과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친히 "못 박히도록" 내어 맡기시는 분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유감스럽지만,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 짤막한 말이 우리에게는 빈번하게 아주 끝없이 어렵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 말을 일단 터놓고 말하게 되면, 하나님과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이 열릴 수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란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시어" 우리가 마땅히 애통하고 통곡해야 하지만, 우리의 심령은 전혀 애통할 줄 모를 정도로 냉정하고 무관심한 상태로 변해버렸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보다는 우선 불만이 앞서며,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보며 애통하기 보다는 오히려 "악의적인 기쁨"을 기꺼이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애써 못 본 척하며, 이웃의 실수나 잘못을 더 부풀려 지적하고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화해와 용서를 베풀어야 할 자리에서 비겁하게 달아나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총과 간구의 심령을 회복하여, 마땅히 애통해야 할 때에 애통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슥 12, 9 - 13, 1 눅 1, 26 - 28

배경 찬양은 "Steyer & Jazz-Chor"의 "Es kommt ein Schiff, gelade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