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스가랴

'경제 살린다'는 달콤한 유혹

그리스도의 편지 2011. 12. 13. 00:00

Candle




'경제 살린다'는 달콤한 유혹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슥 11, 12)

 

    한 나라가 양심도 없이 속이는 지도자들의 손에 떨어지는 일은 비극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훨씬 심각한 비극은 백성들이 정치적 유혹자를 전혀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실에 놓여 있다. 백성들이 그 대신 불의와 나쁜 일에 너무나 익숙해 있어서, 모든 선한 일에 맞서 싸우는 일에 무감각해지게 된다.

    이와 똑같이 스가랴 11 장에서는 서술되고 있다. 그 때문에, 예언자 스가랴는 얼마 있지 않아 실망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는 자신의 사명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지는 품삯이 무엇이었던가?! 은 삼십 개였었다. 이것은 "통상적인 노예에게 지불해야만했던 액수" (출 21, 32) 와 똑같았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100 년 뒤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댓가" (마 26, 15)로 받았던 액수와 똑같다. 그야말로 비웃음꺼리의 액수인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이것은 그리 변한 것이 없다. 인간들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삶이 기만을 당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들을 찾아 발견하고 모든 댓가를 지불하고도 사랑하시고자 하는 일로부터 예수님을 결코 저지하지 못할 것이다.

 

   속담에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돈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금, 소액금, 공납금, 등록금, 지폐, 돈 걱정, 돈 지갑, 현금 자동인출기, 돈세탁, 금전욕, 휴가비, 용돈, 벌금, 현상금, 뇌물, 팁, 포상금, 보석금 등등의 용어처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할 것 없이 돈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돈"이란 표현은 영어로 "guilt 죄"란 단어와 연관이 있습니다. 원래는 "돈"이란 개념은 결국 종교적인 연관 속에서 사용되었고 제의적인 지출에 대한 명칭입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갚을 수 있느냐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세상의 돈을 내고 죄에서 풀려날 수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몸값으로 지불하고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신 것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한국 국민들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에 대해 눈을 감았습니다. 온 국민들이 이렇게 "경제", 즉 "돈"을 우선으로 택한 정권이 바로 2MB 정권인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어렵게 싸워 얻은 한국 민주주의를 뒤로 제쳐두고서, "경제", 쉽게 말하면 "돈"과 맞바꾼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를 지난 4 년 동안 내내 그리고 앞으로 1 년 더, 나아가서 두고두고 미래에도 감내해야만 할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것도 죄에 속하며,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외면한 것도 물론 죄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나 교회들이 말씀에 기준하지 않고 얄팍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이 잘못된 선택에 동조했다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죄에 속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돈"이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돈보다 더 귀하게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함을 깨닫게 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슥 11, 4 - 17 마 21, 28 - 32

배경 찬양은 "Steyer & Jazz-Chor"의 "Es kommt ein Schiff, gelade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