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삼하 2, 5)
오늘 본문의 텍스트를 말한 것은 바로 다윗이었다. 사울 왕이 죽은 뒤 그 자신이 왕이 되었을 즈음에, 다윗은 이것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아직 전 이스라엘을 지배하지 못하던 때였다. 단지 유다 족속들만이 그를 기름부어 왕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동요르단에 위치하는 길르앗에서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이 일로 야베스 성이 다윗의 원수에 속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렇다면?! 하지만, 이것은 지금 전혀 상관없었다. 그들은 자선을 행했었고, 이 일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사울이 야베스 사람들을 극심한 위협에서 보호하고 구했을 때, 그들 스스로 이 일을 한번 체험한 적이 있다. 그때 사울은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삼상 11, 13)고 말했던 것이다.
당황스럽게 하는 모든 체험들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의 큰 흐름은 계속 은밀하게 흐른다. 중요한 일은 우리 자신의 삶이 이 흐름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눅 6, 36)고 권면하시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세상심판에 대한 그림같이 전개되는 비유 (마 25, 31 -46)에서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행했거나 거부했던 사실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굶주린 자와 목마른 자를 돌보는 일, 이방인을 기꺼이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는 일, 병든 자를 돌보고 갇힌 자를 찾아가 보는 일등 소위 이웃들에게 기꺼이 베풀어야 할 6 가지의 자선행위들입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해서 일곱번째 자선 행위는 바로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 왕에게 베풀었던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가 예외없이 죽게되며 흙으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은 결국 이런 슬픔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슬픔의 길을 단지 지나가야 함을 인정하며 이웃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풍성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삼하 2, 1 - 11 엡 4, 8 - 16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서로 사랑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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