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요한복음

말씀은 살아 역사할지니

그리스도의 편지 2010. 6. 11. 00:00

Candle




말씀은 살아 역사할지니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  25)

 

  

    의심할 것도 없이 사도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 수없이 많이 기록했었다. 우리가 요한복음 저자의 말을 듣게 되면, 이렇게 물론 단지 부분만 기록되게 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2 천년 뒤의 우리들에게는 보다 다른 어떤 것들이 중요하다. 스스로 예수님의 사역을 다른 사람이 쓴 것에 이어 계속 한사람이 쓰는 일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이것으로써 과연 이 장서가 종결이 될 수 있을까? 전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믿음의 공동체가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가 부활하여 살아계신 몸으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활동하시는 데에 놓여있다. 요한복음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제자들은 언제 도대체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하실지에 대해 그 당시에도 이미 다투었던 것이다. 재림하실 그 때가 되어서야 성경책은 마침내 완성되어 질 것이다.

   

    요한복음을 마지막 구절을 대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이 역사하시며 말씀이 기록되고 있음을 특별한 한 연극공연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963년 모스크바 시립극장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경향을 부채질하고자 "연미복을 입은 그리스도"란 반그리스도교적인 작품을 초연하게 되었습니다. 주연배우 역을 맡았던 로스토프체프 Alexander Rostowzew는 아주 잘 알려진 공산당원이었습니다. 극의 1막은 맥주병과 보드카 병이 가득 찬 제단 위에서 괴성을 지르는 성직자들과 수녀들이 등장합니다. 로스토프체프가 2막에 예수님을 비웃기 위해 성경을 들고 등장하게 됩니다. 원래 각본에는 산상설교의 첫 두 구절을 읽고 난 뒤, "나에게 연미복과 실크헤트를 주시요!"라고 크게 고함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고 계속 읽었습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읽자, 관중석은 쥐죽은듯이 조용했고, 연출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습니다. 관중석은 숨을 죽였고, 로스토프체프는 계속 이어서 읽어내려갔습니다. 마지막에 성경책을 닫고 성호를 그으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눅 23, 42)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이에 아무도 웃지 않았고, 애초 각본과는 전혀 다르게 연기했으므로 이 공연을 계속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 그곳에서 말씀하셨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예화와 함께 요한복음을 마치게 됩니다. 각자가 서 있는 처소에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21, 20 - 25   딤후 2, 8 - 13

  

배경 찬송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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