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 12)
기독교는 의심스럽고 비밀스런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개적이며 모든 인간을 초청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제까지 예수님이 실제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계시들로 인해 남들보다 좀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악의 꽃"들로부터 요한은 분명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서문에서 예수님의 전 사건들에서 강조하는 일들에 자신이 결코 지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말한다. 누가 맹인의 눈을 뜨게 했으며, 세상에 가져온 빛으로 친히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를 풍성하게 하셨는지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단순한 결정은 두려움없이 인간적인 공동생활 속에서 수많은 그림자를 걷어 치우게 할 능력을 준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되고 서로 바라보며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상에서 빛을 계속 전파하기를 원하신다.
과거에는 성 (性, sex) 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오늘날 수많은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드러내고 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한편으로 신앙과 종교는 성인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어떤 무엇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인들은 늘 거듭해서 아주 "미숙한" 현상을 더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것으로 이미 입증된 각종 습관과 자리를 독선적으로 고집하게 됩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실제로 전혀 선하지 못한 것들에 가능하면 빠르게 도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학문과 연구에서 아주 위대한 인물인 아인스타인 Albert Einstein이나 쉬바이처 Albert Schweitzer 같은 사람들은 항상 거듭해 인간들에게 선하며 진척시키는 또 다른 "천진난만한" 차원을 발견했습니다. 한편으로 자신들의 한계,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창조를 위한 지식의 본질로서 '어린아이의 존재'를 찾았던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기술화된 세계에서 이러한 안목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어린아이, 특히 하나님의 어린 자녀가 되고자 해야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은혜와 화평을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요 1, 9 - 13 요일 4, 11 - 16
배경 찬송은 "사랑하는 자녀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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