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기쁘)게 하는 사랑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새로운 계명을 주신다고? 그것도 상호간에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웃사랑을 위한 요구는 실제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 말씀 가운데서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것일까?! 예수님 제자들은 여전히 유다가 나간 뒤에 쾅 닫혀진 문소리에 휩싸인 채로 있다. 유다는 그곳을 떠났으며, 문은 환멸감을 느낄 정도로 쾅 닫혔다. 그렇게 유월절 식사는 급작스레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쾅 닫혀진 문의 상태 안에서 예수님은 말문을 여신다. 주님은 단지 주님만이 가능케 하실 수 있는 형제자매간의 사랑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감정이입을 하신 채로 말씀하시며 제자들과의 이별을 준비하신다.
유언과도 같은 이별을 위한 말씀 -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 대한 주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사랑은 순수한 이웃 사랑에서 형제자매간의 사랑으로 변하는 깊은 근거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또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약속하신 새로운 계명은 완전해졌다.
우리는 "진실되고 완벽한 사랑이 있다!"는 문구를 자주 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통해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자동차에다 쏟는 사랑과 애정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일이 분명하게 훨씬 쉬울 것입니다. 완벽한 사랑에 대한 꿈이 실현될 새로운 내적인 원천을 개발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애호하는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이런 내적 개발도 우리 자신에게는 엄청난 부담과 노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서 우리가 단지 선물로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에 대한 성경적 약속은 우리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사랑을 위한 힘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부담되게 하는 사랑보다는 기쁘고 자유롭게 하는 사랑을 향유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 샬~~~롬
요 13, 31 - 38 마 10, 34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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