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요한복음

여리고 장미 (Anastatica hierochuntica)

그리스도의 편지 2009. 7. 19. 00:09




여리고 장미
(Anastatica Hierochuntica)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 4,  7)

 

 

    오늘 묵상 텍스트에는 한 여인, 남자 그리고 물 한 모금이 주제가 되고 있다. 남성을 우월시하는 예수란 말인가? "마실 물을 좀 달라!"는 것은 남성적인 거드름을 피우는 행동만은 아니다. 남성 우월적으로 보이는 이면에 새로운 삶의 상징이 놓여 있다.
    "마실 물을 좀 달라!" 이것이 이방인 여자에게 - 게다가 부정한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더 더욱 - 말을 걸어서는 안 되는 한 유대인 사나이의 부탁이다. "마실 물을 좀 달라!" 이 부탁은 스스로 갈증을 겪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원한 찬물 한 모금은 갈증의 해소 이상의 어떤 것이다. 이 한 모금이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부탁하는 사람은 받을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고자 한다. 한 모금이 아니라, 샘 자체를 주고자 한다. 예수의 말을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의 행위는 생명샘을 위한 상징인 것이다. 남성과 여성,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 사이에 놓인 경계가 없어지게 된다. 단지 갈증을 가진 인간, 즉 물과 생명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4절)고 보장하시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하면 우리는 한 식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수천 년전부터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사막에서 자라는 "여리고 장미,  Anastatica hierochuntica (Brassicaceae)"란 식물입니다. 이 식물은 절대로 죽지않고 살아 남아서 '부활식물'로 불리기도 합니다. 물 한방울 없는 건조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수천 년간을 버티고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사막 위에서 뒹구는 마른 검불같이 보이지만, 수분과 접촉하면 순식간에 배로 커지고 푸르르게 되며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즉 짧은 시간 내에 마른 나무 막대기와 같은 검불에서 장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단지 생명 샘물을 마시기만 하면, 갑자기 피어나며 새로운 예측할 수 없던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샘물로 초청하십니다. 이 샘물을 마시고 '여리고 장미'와 같은 생명력을 유지하는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4,  1 - 14,   눅  5,  17 - 26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316장 찬송 "목마른 자들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