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니"와 "아니 벌써"의 차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0, 1)
하나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위로의 서곡과 함께 당신의 백성을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인도하신다. 아직까지 모든 것이 절망처럼 보이기만 한다. 바벨론 강가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고 질식될 것 같은 목소리로 애가를 부르며 회의하면서 체념한다. 모든 절망속으로 깊숙히 - 오늘날의 절망도 마찬가지로 - 하나님의 관심사가 울려 퍼진다. 매 말씀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돕고자 하시는 것과 슬픔과 고통에서 건져내시고자 하는 관심을 표명하신다.
두번이나 반복되는 "위로하라!"는 권면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우리는 아주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자애스런 개입을 바랄 수 있으며, 또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서로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야에서 결코 잃어버리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확언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고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힘주시며, 선한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우리를 당신 품에 꼬옥 껴안으시고 가까이 보호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입장을 바꿔서까지 관철하신다.
다시 건강하게 되어질 가망이 불분명한 중병에 걸린 형제자매를 주위에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많은 주위 형제자매들이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로 지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중보기도할 때, 꼭 명심해야 할 점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외적인 상황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그 아픈 형제자매에게 임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또한 아픈 사람을 위해 우리가 중보기도를 감당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통해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는 것이며, 외형적으로 "아직도 아니다"란 사실을 인식할지라도, 중보기도로 "이미" 받은 것으로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사 40, 1 - 11, 계 21, 10 - 14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489장 찬송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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