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날씬한 경건의 몸매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눅 5, 33)
일반적으로 "자주 금식하고 기도에 열심인 것"이 마치 경건의 척도가 되는 것처럼 보이기가 십상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겉으로는 결여된 반면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철저하게 실천하고 실제로 행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시고 있다. 하지만, "은밀한 중에" (마 6, 18), "마귀와 대적하는 중에" (막 9, 29)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재중인 신랑을 그리워 하는 중에" (눅 5, 35) 기도하며 금식하라고 권하신다. 하지만 금식이 결코 경건의 징표가 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적인 성과나 업적에 결코 가치를 두시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인간들, 생명과 사랑에 놓여 있다. 금식은 어떤 것을 동경하는 마음의 표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전히 신체적 정화를 위해 금식하는 사람은 스스로 판단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언급하시고 있는 금식은 하나님과의 관계성과 하나님에 대한 동경이 주된 관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도 그렇다. 참선은 내적 안정을 줄 수 있지만, 이것은 인간 자신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수님이 의미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우리가 식별할 수 있을까? 바라건데 하나님을 향한 동경과 생명을 위한 사랑을 통해 식별해야 할 것이다.
금식과 관련해서,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두가 잠이 든 한밤중에 사제들 중에 한 형제가 "형제여! 살려줘! 어서 일어나!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야!"하고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 소리를 듣고 그를 도우기 위해서 즉시 일어났습니다. 상을 차리고 요기할 만한 모든 것을 식탁에 가져와서는, 자신부터 먼저 배부르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프란치스코는 그 형제에게 "현명함의 미덕"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는 자신이 가진 능력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아낀다. 이같은 일은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에게 넘치도록 먹을 것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을 아끼고 굶는 지극히 어리석은 일과 꼭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기도와 금식이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 정립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면, 미련하게 과식해서 비만증에 걸리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적절한 식사로 날씬한 경건의 몸매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5, 33 - 39, 마 6, 6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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