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잠언

진정한 지혜는

그리스도의 편지 2008. 6. 26. 01:02
 



진정한 지혜는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잠 26,  12)


 

     아주 명석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아주 복잡한 연관성들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인 경우에는 자신의 이름 석자조차도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두 그룹 사이의 차이점은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발명과 지식들에 대해 실제로 명석한 사람들의 신세를 지고 있다. 이 사실을 그리 문제삼을 필요도 없지만, 문제시 될 수도 있다. 잠언서의 지혜는 이런 문제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능력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을 과시하고 건방지게 될 위험에 빠진다. 이것을 통해 가정에서나 다른 공동체에서 상호관계가 부담으로 가중된다.
 

 

    지혜는 소위 자신의 지식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는 일에 속한다. 이것은 명석한 것과 별개의 일이다. 세상에는 자신들의 현명한 태도와 조언들을 가지고 수많은 선한 일들에 기여한 소박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 없이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메말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식인을 거만함에서 보호하시고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도록 간구해야만 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소박한 사람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유명한 독일 철학자 피히테 Fichte와 코트뷔츠 Kottwitz 남작 사이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그 당시 베를린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던 코트뷔츠 남작이 하루는 피히테 교수를 방문했었습니다. 피히테 교수는 소박한 남작의 기독교적인 이념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에게 "아이들은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단지 기도하지요"라고 말했습니다. 피히테 교수의 이런 말에도 남작은 전혀 상처받지 않고, 조용하게 "교수님! 저는 매일 600 명을 먹여살려야 하는데, 늘 어디서 그 많은 빵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한가지 방법만을 알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언제나 저를 도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철학자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그래요, 존경하는 남작님! 거기까지는 저의 철학도 미칠 수 없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피히테는 아주 겸손하고도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믿음을 소유한 남작을 알게 되었고, 아주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피히테 교수는 죽기 바로 직전에, 아들의 후견인으로 코트뷔츠 남작을 지명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믿는 바 그대로 실천하는 참된 지혜를 간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잠 26,  4 - 12,       17,  8 - 13  

 

배경 찬송은 LA 오렌지 중앙 성결교회 "에바다 성가대"의 "누군가 너를 위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