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마 27, 3)
예수를 원수들에게 넘겨주었던 유다도 후회했었다. 이 후회는 그를 인간적으로 만든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원치 않았었다. 유다가 자신의 배신으로 원래 무슨 목적에 이르고자 했는지에 대해 알려고 자주 노력했었다.
유다가 돈 때문에 했던 것은 확실히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에서 바로 유다를 물욕을 가진 유대인들의 왜곡된 모습으로 만들었다. 유다는 증오스런 로마 제국에 맞서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예수에 대해 실망한 것일까?! 어두운 불행이 유다 위에 맴돌고 있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마 26, 24)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유다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되돌릴 수 없었다. 자신의 후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용서를 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를 용서할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지만, 유다는 예수께로 다가갈 수 없었다.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거나 피해 입힌 사람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하는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고난주간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