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할 수 없는 상처들이 있으며, 다시 좋게 할 수 없는 죄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 문제가 주제가 되고 있다. 사마리아 성을 몰락시키는 데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책임을 지는 부조리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미가 선지자는 이 소식을 그들에게 알린다. 이제 회개를 위한 마지막 호소도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미가는 사마리아 성에 대한 이 예리한 비난을 북 이스라엘에 넘길 수도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주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가는 도피하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의 죄인 것처럼 울부짖는다. 미가는 마치 자신이 포로로 끌려간 것처럼, 슬퍼하면서 길을 헤맨다 (8절).
미가는 더불어 괴로워하며 이 가운데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도록 한다. 이 사실은 성경 전체에 유효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 18, 23)고 말씀하신다.
고칠 수 없는 상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진정한 용서일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골로세서에서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 13)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간 상호간에 용서는 특별한 치유의 능력을 가지게 되며, 용서와 더불어 피차에 서로를 화평 안에 거하게 묶어주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 구속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인간들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용서를 통해 상처를 아물게 하며 화평 안에 거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