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일에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제자들은 감히 질문할 용기가 없다. 그들이 예수를 방해하고 싶지 않을까? 그들에게 자신들의 무지가 창피했을까?! 하지만, 이 가운데는 어리석은 질문은 결코 없었다. 게다가 예수님은 그들 심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계신다.
제자들은 일의 실태를 피하는 대신 구체적으로 규명했어야만 했었다. 그들의 생각은 서열과 명예를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비교하기 시작했었는데, 결코 좋은 생각이 못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안목으로 - 즉, 대단한 것으로부터 사소한 것으로, 첫째로부터 끝으로 그리고 주인에서 하인으로 - 인도하신다.
우리들이 예수님께 무슨 질문이든 할 수 있으며, 이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헌신의 예로서 고통과 죽음보다 더한 것도 내어놓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선한지 모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고 모두가 말할 때 처음으로 예수님의 원래 개선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숨김없이 설명하실 수 있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공동체를 위해 헌실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은사와 재능을 베푸셨을까?'하는 문제가 늘 대두하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는 봉사의 은사는 결코 가지지 못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은 '큰 수고없이 은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고 이해합니다. 심지어는 '기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몇몇 시간이고 기도하며 이것이 대단한 일이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섬기는 봉사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행동에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보편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고 믿으며 고백하고, 의자를 치우고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며 노약자들을 돌보는 일들을 기꺼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런 오해없이 기꺼이 이웃을 섬기는 봉사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막 9, 30 - 37 막 7, 24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