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 9, 15)
예수님이 멸시받던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함께 나누시는 일에 대해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거부감을 느낀 일이 있었을까?! 그 대신에 그들은 간접적으로 '왜 예수님과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했었다. 금식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업적을 인정받을 만한 준비로서 여겨질 수 있었다. 예수님은 '천국은 이미 시작된 결혼식과 같다'는 비유로서 대답하셨으며, 예수님은 바로 신랑이시고 지금 먹고 마시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바로 혼인잔치의 손님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곳에서는 더 이상 금식할 필요가 없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공을 쌓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는 모든 것이 다르고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익숙한 규정들은 더 이상 새 시대에 적합치 못하다. 금식은 단지 근본적인 것, 즉 우리가 모든 것에 은혜를 입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고려할 가능성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뒤따르는 모든 일들은 중요하다.
예수님이 혼인 잔치집에서 금식에 대해 질문을 받았던 사건을 한국의 고유 명절인 한가위에 금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먹을 것이 풍성한 기쁜 날에 금식에 대해 말하면, 그야말로 가혹하거나 상황에 적합치 못한 넌센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본문에서 "즐거워 해야 할 때 함께 즐기며,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며 금식하라"고 권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충실하게 율법에 얽매인 나머지, 정작 근본적인 내용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새롭게 되면, 우리는 이에 적합한 새로운 생각과 이념이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하는 생명의 시계가 멈춰 선다면, 우리는 이 시계의 시간을 맞추고 시계침을 계속적으로 움직이게 할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 5)고 하신 것입니다. 의식이 깨어 있어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열어 볼 수 있는 복된 새로운 한 주간이 되시길....샬~~~롬
마 9, 14 - 17 약 2, 14 - 26
배경 찬송은 "나의 모든 행실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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