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 3)
도대체 어디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실까? 오늘 본문인 시편 133편은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의좋게 사는 곳" (1절)이라고 답하고 있다. 여기서 맨 우선적으로 육신의 형제, 즉 야곱과 에서, 요셉과 그의 형제들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뜻하는 범위를 특별한 수고없이도 확장해 볼 수가 있다. 이 문제는 인간의 삶 속에서 서로 관계하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들이다. 즉, 결혼과 가정생활, 기숙사나 양로원 생활, 학교, 교회 그리고 직장 생활 나아가서 휴가나 운동시간에 서로 옆에서 함께하는 이웃사람들과의 문제들이다. 여기에는 물론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을 달리하는 정적들도 포함된다.
인간들끼리 화목하게 살 수 있고 서로 화합하며 참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이웃에게 관용으로 배려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아름답고 선한 일이다. 이런 일이 '통상적인 것도 아니며 지속적인 상태도 아니다'라고 시편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이 서로서로 화평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곳, 바로 그곳에 생기나게 하는 시원한 샤워나 가뭄 때 메마른 땅에 풍족하게 내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 (2 - 3절). 이 곳에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며, 바로 이 때 우리 일상생활의 한 가운데로 영생의 빛이 비취게 된다.
우리 인간의 삶은 어쩌면 일종의 단체경기와도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관점을 서로 관용으로 존중하며, 위협받는 이웃을 신속하게 도우며, 다른 이웃의 능력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일, 바로 이것이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중요시 해야 할 미덕인 것입니다. 이러한 미덕을 몸소 실천하며, 이것을 존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고백합니다. 애석하게도 고국에서 이러한 미덕이 부족하여 전직 대통령을 투신자살로까지 내몰아 붙인 인간적으로 비극이며, 국가적으로 수치스런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며, 결코 고인보다 한점도 의롭거나 깨끗하지 못한 무리들에 의해 가해진 일이라 더욱 더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지방색으로 편을 가르는 것도 부족해서, 논리상으로도 맞지 않는 이념적 좌우를 갈라 서로 분쟁과 싸움이 있는 곳에는 여호와의 축복이 결코 함께 하시지 않음을 오늘 시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고국에서 일어난 비극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하는 현정권의 권력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축복받는 일이 무엇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고,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사명감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현재 서 있는 곳에서 서로 연합하여 동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복된 주의 날이 되시길 .... 샬~~~롬
시 133, 요일 4, 16 - 21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258장 찬송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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