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 73, 28)
시편 73편의 시작은 오늘 묵상 말씀처럼 확신에 가득차 있지는 않다. 시편 기자는 처음에 훨씬 더 악조건에 놓여 있었다. 매일 새로 밝아오는 날이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무엇이 그의 삶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생각은 의심에 가득차서 '믿지도 않는 이방인들이 양지바른 곳을 차지하는 데, 왜 내가 고통당해야 하는가'란 미궁 속에 맴돈다. 자신이 이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는 사실이 그를 병들게 한다. 자신이 질문, 탄식과 비교를 그만 두게 되었을 때, 그는 그때서야 마침내 안식할 수가 있었다.
"신을 부정하는 일은 무질서 속에서 끝나며,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이 승리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 그에게 순간적으로 명확하게 된다. 환호하면서 자신의 기쁨이 다음과 같은 사실에 놓여 있음을 요약한다. - 그가 자신을 손으로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꽉 붙들어도 되며, 확신에 가득차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권 아래 오늘과 내일이 있음을 깨닫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선하심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과 매일매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유익함을 환기시켜줄 수도 있다.
이제까지 살면서 우리는 한번쯤 "하나님!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도대체 주님은 어디에 계셨는지요?"하고 통곡해 본 적이 있을 줄 압니다. 더 심하게는 "도대체 내가 왜 하나님을 믿었을까?" 내지는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계신걸까?"하고 깊이 회의에 빠진 일이 있을 줄 압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나 바보로 낙인을 찍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이 큰 즐거움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시 16, 11)라고 주야로 고백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고백가운데 주님의 행사를 듣고 계속 전하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73, 고전 1, 18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