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막 15, 17)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고 괴롭히는 일에 관한 것이면, 인간들은 아주 잔혹하게 독창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미군들이 바그다드 근처에서 포로들을 고문한 일, 일본 만주군들이 독립군을 잔인하게 생체 실험했던 일 그리고 나치가 유태인을 강제수용소에 산채로 태워 없앴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예수님 또한 헤롯 당원들을 통해 폭력과 조소를 당하셔야만 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갖은 고통을 당하셨으며,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침 뱉으며 성난 군종들에게 내맡겼다.
조롱하는 자들이 예수님께 진리에 합당하는 자색 옷과 가시 면류관으로 무의식적으로 왕의 위험을 인정하는 일은 비극적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 모욕을 주는 자들은 자신들이 그 당시에 행한 일을, 이 고난이 자기 자신들, 즉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몰랐을까?! 몰랐다! 그들은 가장 깊은 나락에서 죄인들에게로 향한 연대를 결코 포기하시지 않고 굴욕당하는 자를 감지하지 못했다. 바로 그는 그들과 우리 인간들을 기꺼이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구세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