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슥 11, 12)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은 삼십 개,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를 위한 품삯이기도 했었다. 수 백년 전에 이미 스가랴 선지자는 진솔한 경고를 미리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백성들에게 책임져야하는 "목자들"이 문제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선한 목자의 자리에 앉히게 되며, 정해진 시간 동안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이때, 백성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목자들"은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더 거부당하게 되며, 공동생활은 와해되게 된다. 자신의 헌신을 위해 목자는 단지 체면을 손상시키는 품삯, 은 삼심 개만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율법 (출 21, 32)에 따라 불행을 당해 목숨을 잃은 노예에게 생명을 위해 지불했던 보상금이었다.
이 삯으로 단지 "목자들"만이 아니라, 사명을 부여한 하나님도 조롱받게 되는 것이다. 가룟 유다에게서처럼 심판과 파국은 그 결과인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목자들"을 필요로 한다. 목자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고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 갔었던' 예수님과 연합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