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 전도를 감행한 일은 초대 교회를 거의 분리시켰다. 베드로처럼 야고보도 무엇이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거나" "짐을 지워서는" 안된다.
할례와 유대 율법이 일종의 그러한 짐이 였다. 이러한 것들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해서는 안된다. 화해는 다른 사람의 특수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실제적인 것에서 명확한 것을 필요로 한다. 두 사도는 소위 사도 집회에서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 몇몇 제사의 문제 (피를 다 쏟아내지 않은 우상 앞에 제사 지낸 고기를 먹는 일과 피를 마시는 일의 포기)에 대한 양보는 이방 그리스도인을 존중한다는 사항이 그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내용이며 은혜의 자유로운 선포인 것이다. 이것을 위해 믿을 만한 증인들이 필요하다.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여행하면서 믿음을 굳게 했다. 예루살렘 공회의의 허가를 받아서 이방 지역에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유럽 내에 기독교의 전파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적대시하지 않아야만 선교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무려 190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95년전인 1910년 6월 15일에 스코틀랜드 수도 에딘버러에서 열렸던 최초의 "세계선교협회"였던 것입니다. 이 회의는 150개 선교단체들이 참석해서 구성되었는데, 미국 YMCA 총무였던 모토 (John R. Mott)씨가 회장을 맡았고 이 모임을 통해 "국제 선교회"가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이 회의에서 획기할 만한 결정은 "교회의 통일을 위한 초교파적인 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생각을 이해시키고 신뢰를 얻을 일군들이 없으면, 협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이를 위해 모토 회장은 2년 동안 전 아시아를 두루 다니면서 협조를 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이 계획이 무산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새롭게 교회와 선교의 통일을 위해 계속 설득하여 세계선교의 기반을 다졌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신과 노력이 한국 기독교가 아직도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은 러시아, 몽고, 중국, 아프리카 그리고 회교도인 중동 선교에까지도 비젼을 가지게 한 기반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형식보다 늘 복음의 내용을 중요시하며, 예수님이 값없이 그저 선물로 주신 사랑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삼일절"의 뜻을 새기는 하루가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