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 12)
금방 사랑에 빠진 연인을 알고 있는가? 그들의 몸 전체에서 열애가 샘솟는다. 그들은 아무도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연인에 대해 즐겨 말한다. 어떤 특수한 약제의 신기한 약효를 경험한 사람을 알고 있는가? 그 사람은 이 약제를 계속해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한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이와 똑같다. 이들은 침묵할 수가 없다. 그들 자신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한 큰 발견이 그들을 아주 사로 잡았다. 예수의 이름 안에, 예수란 인격에 구원이 있었다. 예수는 모든 잃어버린 자를 위한 구출은 물론 모든 망가뜨려진 것과 부서진 것을 위한 치유자이시다. 이웃들의 아주 일반적인 매일의 고통 중에서도 이들은 이것을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심문 중에서도 앞으로 이것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이라고 약속할 수가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해 최상의 것을 찾았던 것이다. 예수를 믿고 고백하는 자는 스스로 아무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아니할지라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그 당시에 베드로와 요한을 행동하도록 내몰았던 것이다. 오늘날도 꼭 마찬가지로 이 복음이 우리를 행동하겠끔 한다.
우리 모두는 전도한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세요!" "우리 목사님 설교 참 잘해요!" 심지어는 "우리 교회 분위기 아주 좋아요, 한번 나와 보시지요!" 등등의 말로 전도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럴 때마다 흔히 되돌아오는 답이 기독교나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이 세상을 위한 유일한 기회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미친 사람처럼 예수님을 이야기하며 전했듯이, 사도들의 신발 끈을 매는 흉내라도 내는 "예수쟁이"로 사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샬~~~롬
행 4, 1-12, 행 11, 19-26
배경 찬송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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