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2011. 4. 23. 00:07
은밀하게 밝혀지는 진리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마 27, 65)
이 날에 누가 원래 두려움을 가졌을까? 제자들이다!! 한결같이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붙잡히던 순간에 제자들 대부분이 슬쩍 자취를 감추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누구에게 두려움을 가졌단 말인가?! 증명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이미 죽었다. 무덤 안에서부터 도저히 열 수 없는 돌무덤 속에 장사한 바로 지금 순간에 무엇을 두려워 할까? 예수님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어떤 화근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걱정한단 말인가? 죽은 사람을 지키는 사람들을 대기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은 증오의 대상인 점령군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었다.
게다가 돌로 봉하게 된 사실은 결국 이 예수의 일이 죽은 뒤에도 예측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격렬한 공포를 다시 한번 역설해 주고 있다. 이 일로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이 정말 옳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모든 안전조치들이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는 아직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한 말이 겁이나서, 군대까지 동원하여 시신을 철통같이 지키는 어리석은 살아있는 인간들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독재자들도 지속적으로 고통스러운 진실들을 가능한 한 비밀로 유지하고자 열중합니다. 북한정권이나 과거 동독정권이 이에 해당되며, 우리나라도 과거 유신정권 시절에 그러했었으며, 4대강과 관련하여 "불편한 진실"을 애써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이 떠오르는 여명을 결코 막을 수 없고, 막강한 힘을 가진 독재권력이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작은 소망을 결코 누를 수 없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미미한 촛불조차도 어둠을 기어코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이렇게 칠흙같은 인간의 심령의 어두움 속으로 와서 빛으로 밝힌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의롭지 못하고 진리와 거리가 먼 일에 들러리 서지 않는 떳떳하고 담대한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마 27, 57 - 66 호 5, 15 - 6, 3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빛의 갑옷을 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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