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2010. 1. 10. 00:33
나의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 73, 25)
오늘 본문 텍스트는 마치 인생의 좌우명과 같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시편기자는 삶 속에서의 모든 갖가지 불의를 보았다.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없이 사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사실이 어떻게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부합된단 말인가? 욥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실까?" (욥 34, 12) 우리가 이런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몰이해를 우선적으로 걷어 내시고 새로운 안목을 베푸셔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시편 73 편에서 "그러나 내가 항상 주를 가까이 하므로" (23절)라는 믿을 수 없는 돌변이 마침내 뒤따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생활환경 속에서 추론해낼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가운데 보여진다. 우리는 죽을 때, 세상의 것이라고는 동전 하나라도 가져갈 수 없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소유한 모든 것들은 없어질 헛된 것들이다.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 안에서 한 친구를 가지는 일, 그리고 주님의 손을 붙잡는 일은 한 인간이 언젠가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다. 이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시편 73편 말씀처럼,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믿음이 삶의 목적이라기 보다는 점점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심한 경우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팔이요 나의 주먹은 나의 미래"라고 오만할 정도로 고백하며, 자신들이 현재 가진 권력, 재산 그리고 능력을 더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소유한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헛되고 헛되도다!"란 탄식과 함께 없어지고 부서질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애지중지하는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전혀 다르게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변함이 없습니다. 영원히 변치않고 스스로 지존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복된 주일이 되시기를 .... 샬~~~롬
시 73 고전 1, 18 -25
배경 찬송은 조준모의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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