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시편

정의는 다른 모습을 띠고

그리스도의 편지 2009. 9. 27. 00:21



 
정의는 다른 모습을 띠고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 11,  7) 

 

    매일 일상의 경험들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믿는 사람들조차도 이 사실에 자주 의심에 빠진다.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 뿐인 딸이 죽게되면 의로운 일인가? 교통 사고에서 부부가 생명을 잃고 술취한 운전자가 살아남기 때문에 죄있는 사람이라면 의로운 일인가?
    이러한 상황들에서 시편기자와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단지 믿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상태를 만족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런데 그것때문에 우리는 또한 그렇지 않아야만 한다. 선한 개개인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3절) 뒤로 물러서는 대신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들을 계속 전하고자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그리 다르게 살아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 (고후 5, 21)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산재하는 불의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불과 유황" (6절)이 아니라, 화해, 관심과 솔직함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돌보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다른 이웃들도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을 기꺼이 보기를 원하신다.

    

   오늘 시편 11편을 마주하면서, 법치를 외치고 있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이 정의인지 아주 심각하게 혼돈되고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용산 참사후 8개월이 넘도록 아직도 장례도 치르지 않고 희생자들은 냉동고 속에서 갇혀 있습니다. 최소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며 인간의 존엄을 중요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정치인들은 온갖 현행법을 범한 자기들이 취임하면 이 일을 해결하겠다고 공약을 내거는 도덕의 수준이 바닥치는 정도까지 와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신종플루에 감염된 사망자가 한 사람씩 늘어날 때마다 정부는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민들도 법과 정의의 개념이 뒤죽박죽 혼돈된 정국에 함께 춤추고 있으며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책임소재가 부재한 현정국을 바라보며 무감각, 무관심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수 천가지의 변명과 달콤한 말로 친서민, 민주와 법치를 외치기 전에, 우선적으로 이들 냉동고 속에 갇힌 영혼을 편안히 쉬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모든 소리가 정직하지 못한 자의 소리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오늘 시편말씀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히 세상의 정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시는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 - 의, 사랑 그리고 인내 - 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인간의 악한 마음에 성령으로 채워 주시고, 각종 죄악 위에다 용서의 겉옷을 덧입혀 주신 것입니다. 하루빨리 조국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자가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는 정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롬

 

시  11     5,  8 - 14   

 
배경 찬송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