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편지/요한복음
우리가 죽은 자 같으나 살리라!
그리스도의 편지
2009. 9. 4. 01:04
우리가 죽은 자 같으나 살리라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이르시길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 26)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님의 도움이 꼭 필요했을 때, 그때 주님은 여기 우리 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실망을 못들은 척할 수가 없다. 우리가 아주 긴급하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도우시지 않으실까?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말씀하신다. 그렇다! 이것을 마르다도 믿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사로가 미래의 어떤 날에 부활하게 될 것이 지금 당장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지금 당장 현재의 고통 중에 나사로가 없는 것이 아픔인 것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기적적인 방법으로 죽은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도 이미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의 지금 당장의 권능에 대해 눈을 열어주신다. 예수님은 "나는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너희가 삶 중에서 마지막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도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한다. 부활할 수 있으며, 다시 살아 사랑하고 웃으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내가 너희를 항상 도울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라. 나를 정녕 믿느냐?"라고 질문하시면서 믿음을 굳게 다져 주신다.
교회는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러가지 다양한 부활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교회가 죽었다'란 선언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스도인이면 교회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늘 거듭해서, 새생명을 주시고 개혁하셨던 것입니다. 인간들 역시 "나는 이제 끝장이야!"란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허락하십니다. 항상 거듭해서 상이한 다양한 방법으로 넘어진 자들에게 "일어나라! 쓰러져서 머물지 말라!"하시면서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항상 반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향한 새로운 믿음과 사랑, 그리고 새희망으로 일깨우십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리라!" (고후 6, 9)는 예수님의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는 거리권 안에 우리가 아직 머물 수 있는 복된 일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일상 중에서도 부활을 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11, 20 - 27, 요 8, 21 - 30
배경 찬송은 국립합창단의 341장 찬송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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