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2009. 6. 4. 01:07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 15, 32)
사도 바울이 "먹고 마시는 것, 삶 속에서 얻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현세의 삶 뒤에 오게 될 삶에 대한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서 말씀 (사 22, 13)을 인용하고 있다. 실제로 죽은 자로부터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 에피쿠르스 학파가 피력했던 것처럼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욕구충족이 최고 목적으로 남게 된다. 고린도인들의 자세는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세례를 받게 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죽은 뒤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저돌적으로 행동하며 살았다.
사도 바울에게는 부활 문제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중심에 놓여 있었고, "그 많은 논쟁을 쓸데없이 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바울 사도 스스로가 확고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충만해야 할 것이다.
철학자 러셀 Bertran Russel은 "영겁을 목전에 둔 사람은 아흔 살 나이에도 아직 젊다"는 말을 자신의 생애 마지막되던 해에 남겼습니다. 러셀은 98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이것으로 "영겁에 비해 아흔 살은 단지 어린애 같다"는 말로써 분명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았음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젊고 늙음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어떤 것을 아직 소망하거나 앞에 놓인 가능성을 아직 믿느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바라거나 소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달리 성경은 어떤 것을 계속 소망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원, 하나님 나라 그리고 하나님 뜻에 따라 다가 올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 한 가운데서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죽음이 가까이 다가 왔을지라도, 소망할 어떤 것을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생한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믿고 바라는 소망이 풍성한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전 15, 29 - 34, 출 2, 11 - 25
배경 찬송은 "그는 완전한 내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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