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2009. 4. 3. 01:19

형제자매가 주께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지는 않는가?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욥 5, 8)
오늘 묵상말씀은 좋은 충고처럼 적어도 들린다. 그 어느 누가 이 말에 반박할 수 있을까? 도대체 왜 할 수 없을까? 경건한 각종의 말로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가운데 있는 욥의 결정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릇되다. 경건한 말이 때로는 바로 살인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교육에서, 갈등 가운데 그리고 시험에 처할 때 경건의 말은 좋은 의도와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듣는 자가 들을 귀를 막는다.
백마디의 경건의 말보다도 어떤 때는 오히려 침묵하고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편이 훨씬 유익할 때가 많다. 우리는 남을 치유하는 사랑의 언어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어깨 위에다 조용히 올려놓는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 아주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 상처가 깊기 때문에 아픈 것은 사실이다. 우리 영혼이 상처를 입었을 때도 이와 똑 같다. 남의 영혼을 상담할 때 너무 많은 논리적인 말이 필요하지 않고, 많은 사랑과 이해가 실제 필요하다. 우리가 욥의 위치에 서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위로가 될까?
독일로 오는 비행 시간이 남은 터라, 다시 밀라노 두오모 성당 앞에 갔습니다. 마침 초교파적으로 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고자 각성대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태리 영적 세계에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이를 치유하고자, 각 종교계 지도자들이 일체가 되어서 진행하는 대회였습니다. 그래서 도처에 경비가 살벌하고 적고 큰 데모 무리가 '각종의 경언의 말'로 데모를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데모 구호를 요약한다면 "하나님은 어떤 종교의 하나님인가?"였습니다. 어떤 종교에 속한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들이야말로 종교적인 경건의 말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태리 여행을 마쳤습니다. 주안에서 좋은 주말 되시길... 샬~~~롬
욥 5, 1-27, 막 6, 7 -13
배경 찬송은 "주님 곁으로 날 이끄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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