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시편

파악될 수 없는 희망

그리스도의 편지 2009. 2. 15. 00:49

Candle




파악될 수 없는 희망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시 69,  32)


 

     오늘 시편 69편을 읽다 보면, 우리 호흡이 딱 중단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기도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도록 빌며, 그들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도록 하나님께 간구해도 될까?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란 말인가?
    그는 주위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는 증오와 비웃음으로 된 진창 속에서 본격적으로 익사할 상황이며, 막바지에 놓여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처한 사람은 목표를 이미 훨씬 벗어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구행위를 결코 강구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야만 하며, 의를 이루셔야 한다. 다시 한번 그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탄식한다. 시편기자는 도움이 절박함을 고백한다.


    여호와께서는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스스로 이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마치 이것은 스위치를 재작동시킨 것처럼, 탄식에서 찬양으로 바뀌게 한다. 아직 도움이 있기 전에, 그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무슨 변화이며 증거란 말인가!? 찬양이 번져 나가기 때문에, 마음이 소생하게 된다.

 

   모세는 모압땅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여호와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멀리서 볼 수는 있었지만, 직접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수많을 것을 희망하고 소망하지만, 이에 대한 응답은 오로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서로 일치하지 않고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구하는 희망과 소망을 결코 소홀하게 다루지 않으시며, 한순간도 우리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 안에서 세상을 이길 용기를 얻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69,  16 - 36,    롬 8,  18 - 25                                            

 

배경 찬송은 "괴로울 때 주님을 얼굴을 보라"입니다.